나의 미디어史 – 커뮤니케이션의 확장
다양한 미디어의 종류만큼이나 내가 각각의 미디어를 접하게 된 방식이나 그것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실타래 처럼 얽혀서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생활세계를 확장하게 한 여러 미디어 경험들 중에서 나는 특히 내가 성장하면서 ‘의사소통’에 사용되었던 미디어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나의 소통 양식은 어떻게 변화되고 확장되어왔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1. 내생에 첫 자발적 미디어 소비 – TV 만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한 미디어는 아마도 동화책이었을 테고, 그 이후로 TV나 라디오 등을 즐겨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미디어 소비라고 하면 초등학교 시절,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 TV앞에 앉게 했던 월트디즈니사의 만화영화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평일에 습관적으로 봤던 모든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뒤로하고 디즈니사의 프로그램만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내 어린 시절을 통틀어 가장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미디어 소비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모두가 일어나기 전, 혼자 TV앞에서 흐르듯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비록 ‘대사’조차 없었지만 아침잠이 많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한 일종의 ‘의식’과 같은 하나의 활동이었다.
2.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 – 사서함, 삐삐, 휴대폰
쪽지나 편지, 카드로 주로 마음을 표현하던 내가 처음으로 기계화된 수단을 통해 의사 소통한 것은 ‘사서함’이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남기고, 내 사서함을 확인해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일은 일주일에 얼마 되지 않았던 용돈의 반을 할애하기에도 전혀 아깝지 않은 재밋거리였다. 비록 그것은 편지처럼 몰래 다시 펴보거나 장시간 보관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시절 우리를 더욱더 ‘빨리’ 연애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의 연애 사가 고민이 수반된 ‘정제된’ 사랑의 글이 아닌 ‘직접적’이고 ‘즉흥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이루어지게 했다. 그러니 고작 초중딩의 연애지만 그만큼 더 불같이 애정을 품고 불같이 분노하게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등장했던 삐삐나 휴대폰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학원을 통틀어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간 ‘전쟁의 불씨’였다. 수업시간에 문자를 보낼 수 있다면 나무책상에 구멍 뚫기도 불사하였던 학생들의 휴대폰에 대한 사랑은 ‘엄지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반면, ‘학생이 무슨’이라는 한 문장으로 끝까지 자식의 손에 그 ‘신기기’를 쥐어주길 거부하신 우리 부모님과 같은 분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었기에 ‘문자 구걸하러 다니는 아이’라는 새로운 ‘왕따의 이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팅Ting”비기알BiGi”홀Hall’요금제가 일반 요금제로 변경된다는 통보 문자를 받았을 때야 비로소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님을 실감하던 우리세대에게 청소년 요금제란 분명 우리 또래집단과 ‘어른’을 구별해 주는 하나의 이었던 건 아닌지 새삼 느끼게 된다.
3. 인적 네트워크의 비약적 확장 – PC통신 이용부터 초창기 인터넷 활용까지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이 나의 생활세계 확장에 가져다 준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서함이나 삐삐, 휴대폰이 가져다 준 변화는 어쩌면 ‘보조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고작해야 우리학교, 옆 학교, 학원친구가 전부던 우리의 인적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천리안, 나우누리에 접속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친구 누구’ ‘내 친구의 친구 누구’가 아닌 그냥 ‘누구’였다. 이름도 생김새도 전혀 모르는 사람과 그저 깜박깜박 이는 커서만이 유일한 움직임인 모니터 앞에 앉아서 ‘소통’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내가 쓴 글이 혹은 누군가의 글이 몇 천명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알려지고 그것이 ‘집단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영향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처음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는 조용하기만 하던 누구가 인터넷에서 어디 동호회 장이라더라와 같이 면대면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던 개인의 평가에 대한 ‘배신’은 누군가에 대한 ‘평판’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하였다.
초창기 인터넷이 주로 ‘만남’을 주제로 한 활동들이었다고 하면, 스무 살 넘어서 나에게 인터넷은 말 그대로 ‘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였다. 광대역 통신망으로 인해 훨씬 빨라진 인터넷으로 나는 소통하는 ‘사람’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정보, 즉 ‘컨텐츠’에 더 집중하고 다양한 컨텐츠를 이용하여 내 지식 체계, 경험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더욱 즐기게 되었다. 그 즈음 유행하였던 싸이월드와 같은 인터넷상의 인맥 서비스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보다는 오프라인 인맥의 2차적 놀이공간과 같은 느낌이 강했고, 간혹 연락이 끊어진 친구와 연결되는 것과 같은 장점도 있었으나 결국 인맥의 중복성은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4. 더 넓게, 더 가볍게 – RSS, SNS, 스마트폰의 활용
인터넷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에 있어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는 RSS서비스와 SNS서비스를 만났을 때부터이다. 인터넷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던 나에게 ‘블로그’와 같은 적극적이고 무거운 서비스는 사실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전문 블로거들이 관리하는 블로그는 생각 이상의 높은 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 RSS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는 또 한번 내 정보망의 확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인문/공학/예술을 넘나드는 학문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소소한 일상 속의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블로그들을 등록해놓기만 하면 업데이트를 알려줘 신문 읽듯 ‘내가 선택한 정보’를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 RSS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 이었다. 이는 서비스 제공자에 의해 선별된 후 제공되는 정보를 받기만 했던 수동적 정보 소비가 나의 선택에 의해 재구성되는, 적극적 정보 소비의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그와 같은 컨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SNS를 알게 되었다. 소위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라고 불리는 SNS는 단순히 의미 없는 수다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개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가장 편리하고 빠르게, 그리고 영향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불특정 다수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 일상의 공간에서 내가 의도하기만 하면 ‘불특정 다수’를 나의 생활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과 다른 이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을 동시에 공유한다는 것은 개인이 소유한 시공간이 비약적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연히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더욱더 확고해졌다. 휴대폰이 전화를 위한 기계라고 말하면 원시인이라는 광고가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에게도 휴대폰은 ‘전화기능이 있는 휴대용 접속기계’와 같은 느낌이다. 대화중의 “그게 뭐더라?”의 다음 스텝이 과거에는 온갖 추측을 동반한 토론이었다면 이제는 “찾아봐”와 동시에 모두가 휴대폰을 꺼내 드는 모습이다. 친구 - 혹은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이’ - 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화하지 않아도 SNS에 접속하는 순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 앉아있는 몇 분 조차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거나 SNS를 점검하는 일상은 사실 얼핏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한다. 이미 더 이상 네트워크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지만, 앞으로 증강현실과 같은 첨단 기술이 확산된다면 이는 더욱더 우리를 ‘늘 접속되어있게’할 것 같다.
5. 맺으며
하나의 힘이 너무 커지면 반드시 그에 반하는 힘이 형성된다. 신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의 발달이 급진적으로 진행될 수록 과거 아날로그적 미디어에 대한 향수 또한 커질 것이다. 가끔 휴대폰을 꺼버린 몇 시간에서 자유를 느끼고, 좁은 4인치 화면을 통한 것이 아닌 내 감각으로 세상을 느낄 때 진짜 세상을 누린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신기술을 통한 인간 감각의 확장이 진정 ‘인간’을 위한 것으로 발달되고, 아날로그적인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조금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