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stone.

혼자일때,

특히 혼자서 길을 걸을 때. 나는 회색이 된다. 소소한것에 귀를 기울이고 소소한생각에 사로잡히지만 그 어느것도 분출되지 않는. 한편 시니컬 하고 한편 도도한 그러나 한편 생기없는 회색이 된다. 

함께일때, 특히나 그와 함께일때 나는 분홍이었다가 빨강이었다가 주황이 된다. 소소한것들로부터 멀어져 그와의 대화, 스치는 손끝에 집중한다. 그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비염섞인 응석과 막무가내식 애정표현, 언제그랬냐는 듯한 분노모드를 번갈아가며 나는 에너지를 마구 분출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창조적인 일을 할때에는 결국 “회색”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일견 생기없는, 일견 외롭고 시니컬한 우울이 온몸을 감쌀때라도 그때가 바로 무언가 “창조적”인것을 해낼때 라는 것을. 고고한 외로움. 이 외로움 없이 인류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결혼을 하는 걸까.

아니 정확하게는.. 어떻게 자신에 인생에서 다른이와 수년을 ‘동행’하겠다고 다짐하는 걸까.

누구나.. 부족한 점, 단점이 있다.

부단히 고쳐나가야지 하고 다짐하고 정말 고치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이던가.

10년전에, 내가 연애를 끝낸 이유는 지금 내가 연애를 끝낼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같다. 결국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애를 통틀어보자면 영 아니바뀌는건 아닐테니, 인생은 결국 한 인간이 스스로를 갱생시켜나가는 과정이 되는듯 하다.

그런데,

다문 나 하나 조차도 전 생애가 걸릴만큼 갱생시키기 너무나 어려운, 벅찬 마당에 역시나 자신의 단점을 껴안고 부단히 갱생해나가야 하는 또다른 인간을 만나 ‘함께’한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아니 진정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일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단점을 가졌으나 앞으로 나아질꺼야. 라고 말하며 나아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내 단점의 마루타가 되어 내가 갱생되는 과정을 함께 해달라고 말하는 행위가, 동시에 나 또한 상대방 단점의 마루타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마루타가 아니라.. 십분 양보해서, 서로가 단점을 받아들여준다고 하면..

서로의 단점, 맞지 않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서로의 단점, 맞지 않는 점을 ‘포기’한다는 것과 사실상 어떻게 다른거지??

포기하면 상대의 미운점이 그저 씁쓸해 보일 뿐이고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아 지는 건가? 그럼 언제 포기가 되고 언제 인정이 되는 거지? 그걸 결정하는건.. ‘사랑의 정도’인 걸까, 아님 그저 ‘개인의 인격’인걸까.

아.. 한가지 만이라도,

누가 나에게 답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나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 당시에는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이제서야 찬란했고, 아름다웠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맞지 않았다는 것. 이렇게 나는 나를 다시 돌아봄으로서 나를 치유해나가길 기대한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나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 당시에는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이제서야 찬란했고, 아름다웠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맞지 않았다는 것. 이렇게 나는 나를 다시 돌아봄으로서 나를 치유해나가길 기대한다…

아 무너진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것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명확한 길조차 보이지 않을 때.
억지로 억지로 겨우 책상앞으로 몸을 밓어놓아 봤으나 흥미도 재미도 없으면서 일부러 딴짓만 잔뜩하다 일을 시작조차 못하고 결국 자리를 떠버렸을 때.

결국, 무너진다.


해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거늘.

너도 참 고집이 세구나.

오늘밤엔 집이 절간같아 질때 쯤. 시작이라도 해야지.

12월 31일이다.
2010년이 이제 ‘작년’이 되어버리려는 이 순간.
날짜가 새삼스러워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러나 요즘은.. 사실 ‘날짜의 특별한’ 느낌이 주는 폐해(?)를 더 많이 느낀 터라 또 한편 조심스럽기도 하다. 12월 31일. 12월 24일. 12월 25일. 연말이면 우두두 몰려오는 12월의 의미있는 숫자들은 간혹, 필요 이상으로 일상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된다. 그러나 높아진 기대치가 꼭 좋은 결말로 이어질 리는 없는법.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방학’이란걸 즐길 수 있는 늙은 학생의 신분에 몸둘 바를 모르는 듯. 방학 전에는 그저 방학이 절박해서, 방학을 너무 간절히 그리고 이미지화 한 나머지 구체적인 계획이란건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통계공부를 해야지.. 이 부족한 텀페이퍼들 다시 써야지.. 하지만 두루뭉술한 계획들은 그저 흐르는 시간속에 두루뭉술 흘러가기 마련이다. 아이고.ㅎ

 

2011년. 이제 스물일곱.

나는 무엇을 하는 중인가. 새해를 맞이하기 전, 최소한 내가 ‘무얼 하고 있는 중’인지에 대한 자각정도는, 그리고 나의 목표가 무엇이었던가 정도는 분명이 해 둬야 할것 같다. 그래야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사실 요즘은 참 ‘중심’을 많이 잃은 느낌이다. 

일단 나름은 적절히, 그러나 열심히 하고있는 연애에 대한 가족의 곱지않은 시선이 가족과 나와의 관계를 서먹하게 하고(사실 가족한테 받는 상처가 더 커질수록 결국 연애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지는데 말이다.. 악순환이다) 그나마 집에 있는 시간에는 정말 마냥 정신줄 놓게하는이제 두달된 첫조카를 보느라 미리 세워둔 계획이라고는 까마득히 잊게 되버리고.. 학교에 간혹 올라오면 뭘할까 이리저리 인터넷하다보면 또 시간이 훌쩍간다. 이게 소위말하는 데드라인 증후군인가.. 데드라인이 없으면 긴장이 없는.

 

나는 ‘지식욕’이 있었다.

더 알고싶고 그래서 더 이야기하고싶은 지식욕. 단순히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고 떠드는게 아닌 위대한 학자, 지식인의 글을 소화할 수 있고 다른이의 지식을 받아들여 거기 나의 견해를 덧붙일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전문인. 

지금도 그 꿈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렇게 되기에 드는 ‘품’이 얼만지.. 갈길이 얼마나 먼지를 서서히 깨닫는 요즘, 과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재목인지 부터 시작해서 그 힘들길에대한 두려움 또한 커져만 간다.

세상에 어디 쉬운일이 있겠냐 하지만.. 문득 이 길이 요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로서 “자율적인 시간안에서의 능동성”이라는게 나에게 있나 하는 의문이 들면  짜여진 스케쥴대로 흘러가는 일반 직장인이 - 물론 다른방면으로 더 힘들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 더 나에게 맞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해 본다.

어찌됐든 일단 발들인 이 코스는 끝내야 할 것이고, 이 모든 고민은 그 후 일테다. 할 수 있을때 원없이 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지. 이게 2011년의 목표구나. 일단 발들인 이 길, 이왕이면 잘,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기! 

 

그래도 주절주절 이렇게 글로라도 쓰니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앞으로는 일기라도 매일 써볼까..ㅎㅎ 여튼,

2010년.. 이제는 고이 접어 안녕!!

^^ 

 

온라인 상에서의 집단지성, 공중에 대한 생각의 단초

- 리프만과 듀이의 공중에 대한 논쟁 -

.

리프만은

올바른 시민 사회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매체의 상술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 공중은 매체에 현혹당하며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수의 엘리트가 그들 대신 판단해주어야 한다는 ‘공중에 대한 비관론’을 제시하였음. 그러나

듀이는

공중이 꼭 그런 능력을 모두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개인은 제공되는 양질화된 정보와 토론등을 이해하고 판단할 정도만 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판단을 돕는 자유로운 소통과 공개가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며, 이런 소통과 공개를 활성화 하기 위한 어떤 ‘개인들 간의 연결 조건’이 중요해 진다는 것이다.

(아래부터는 인용)

따라서,

“개인들이 합리적이며 높은 지식수준을 가지며 윤리적 덕성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정보를 제공받고 활용하며, 필요하다면 고통의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느냐 여부 이다. 이런 조것이 충족된다면, 개인들은 공적인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데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따라서 그 노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공동의 논의와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이준웅, 2009)

 

나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확장

다양한 미디어의 종류만큼이나 내가 각각의 미디어를 접하게 된 방식이나 그것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실타래 처럼 얽혀서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생활세계를 확장하게 한 여러 미디어 경험들 중에서 나는 특히 내가 성장하면서의사소통에 사용되었던 미디어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나의 소통 양식은 어떻게 변화되고 확장되어왔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1. 내생에 첫 자발적 미디어 소비 – TV 만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한 미디어는 아마도 동화책이었을 테고, 그 이후로 TV나 라디오 등을 즐겨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미디어 소비라고 하면 초등학교 시절,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 TV앞에 앉게 했던 월트디즈니사의 만화영화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평일에 습관적으로 봤던 모든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뒤로하고 디즈니사의 프로그램만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내 어린 시절을 통틀어 가장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미디어 소비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모두가 일어나기 전, 혼자 TV앞에서 흐르듯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비록대사조차 없었지만 아침잠이 많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한 일종의의식과 같은 하나의 활동이었다.

 

2.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사서함, 삐삐, 휴대폰

 

쪽지나 편지, 카드로 주로 마음을 표현하던 내가 처음으로 기계화된 수단을 통해 의사 소통한 것은사서함이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남기고, 내 사서함을 확인해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일은 일주일에 얼마 되지 않았던 용돈의 반을 할애하기에도 전혀 아깝지 않은 재밋거리였다. 비록 그것은 편지처럼 몰래 다시 펴보거나 장시간 보관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시절 우리를 더욱더빨리연애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의 연애 사가 고민이 수반된정제된사랑의 글이 아닌직접적이고즉흥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이루어지게 했다. 그러니 고작 초중딩의 연애지만 그만큼 더 불같이 애정을 품고 불같이 분노하게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등장했던 삐삐나 휴대폰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학원을 통틀어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간전쟁의 불씨였다. 수업시간에 문자를 보낼 수 있다면 나무책상에 구멍 뚫기도 불사하였던 학생들의 휴대폰에 대한 사랑은엄지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반면, ‘학생이 무슨이라는 한 문장으로 끝까지 자식의 손에 그신기기를 쥐어주길 거부하신 우리 부모님과 같은 분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었기에문자 구걸하러 다니는 아이라는 새로운왕따의 이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Ting”비기알BiGi”Hall’요금제가 일반 요금제로 변경된다는 통보 문자를 받았을 때야 비로소 더 이상청소년이 아님을 실감하던 우리세대에게 청소년 요금제란 분명 우리 또래집단과어른을 구별해 주는 하나의 이었던 건 아닌지 새삼 느끼게 된다.

 

3. 인적 네트워크의 비약적 확장 – PC통신 이용부터 초창기 인터넷 활용까지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이 나의 생활세계 확장에 가져다 준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서함이나 삐삐, 휴대폰이 가져다 준 변화는 어쩌면보조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고작해야 우리학교, 옆 학교, 학원친구가 전부던 우리의 인적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천리안, 나우누리에 접속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 이상내 친구 누구’ ‘내 친구의 친구 누구가 아닌 그냥누구였다. 이름도 생김새도 전혀 모르는 사람과 그저 깜박깜박 이는 커서만이 유일한 움직임인 모니터 앞에 앉아서소통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내가 쓴 글이 혹은 누군가의 글이 몇 천명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알려지고 그것이집단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영향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처음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는 조용하기만 하던 누구가 인터넷에서 어디 동호회 장이라더라와 같이 면대면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던 개인의 평가에 대한배신은 누군가에 대한평판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하였다.

초창기 인터넷이 주로만남을 주제로 한 활동들이었다고 하면, 스무 살 넘어서 나에게 인터넷은 말 그대로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였다. 광대역 통신망으로 인해 훨씬 빨라진 인터넷으로 나는 소통하는사람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낸 정보, 컨텐츠에 더 집중하고 다양한 컨텐츠를 이용하여 내 지식 체계, 경험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더욱 즐기게 되었다. 그 즈음 유행하였던 싸이월드와 같은 인터넷상의 인맥 서비스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보다는 오프라인 인맥의 2차적 놀이공간과 같은 느낌이 강했고, 간혹 연락이 끊어진 친구와 연결되는 것과 같은 장점도 있었으나 결국 인맥의 중복성은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4. 더 넓게, 더 가볍게 – RSS, SNS, 스마트폰의 활용

 

인터넷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에 있어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는 RSS서비스와 SNS서비스를 만났을 때부터이다. 인터넷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던 나에게블로그와 같은 적극적이고 무거운 서비스는 사실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전문 블로거들이 관리하는 블로그는 생각 이상의 높은 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 RSS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는 또 한번 내 정보망의 확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인문/공학/예술을 넘나드는 학문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소소한 일상 속의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블로그들을 등록해놓기만 하면 업데이트를 알려줘 신문 읽듯내가 선택한 정보를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 RSS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 이었다. 이는 서비스 제공자에 의해 선별된 후 제공되는 정보를 받기만 했던 수동적 정보 소비가 나의 선택에 의해 재구성되는, 적극적 정보 소비의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그와 같은 컨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SNS를 알게 되었다. 소위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라고 불리는 SNS는 단순히 의미 없는 수다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개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가장 편리하고 빠르게, 그리고 영향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사건들을 불특정 다수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 일상의 공간에서 내가 의도하기만 하면불특정 다수를 나의 생활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과 다른 이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을 동시에 공유한다는 것은 개인이 소유한 시공간이 비약적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연히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더욱더 확고해졌다. 휴대폰이 전화를 위한 기계라고 말하면 원시인이라는 광고가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에게도 휴대폰은전화기능이 있는 휴대용 접속기계와 같은 느낌이다. 대화중의그게 뭐더라?”의 다음 스텝이 과거에는 온갖 추측을 동반한 토론이었다면 이제는찾아봐와 동시에 모두가 휴대폰을 꺼내 드는 모습이다. 친구 - 혹은 내가알고 싶어하는 이’ - 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화하지 않아도 SNS에 접속하는 순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 앉아있는 몇 분 조차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거나 SNS를 점검하는 일상은 사실 얼핏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한다. 이미 더 이상 네트워크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지만, 앞으로 증강현실과 같은 첨단 기술이 확산된다면 이는 더욱더 우리를늘 접속되어있게할 것 같다.

 

5. 맺으며

 

하나의 힘이 너무 커지면 반드시 그에 반하는 힘이 형성된다. 신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의 발달이 급진적으로 진행될 수록 과거 아날로그적 미디어에 대한 향수 또한 커질 것이다. 가끔 휴대폰을 꺼버린 몇 시간에서 자유를 느끼고, 좁은 4인치 화면을 통한 것이 아닌 내 감각으로 세상을 느낄 때 진짜 세상을 누린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신기술을 통한 인간 감각의 확장이 진정 인간을 위한 것으로 발달되고, 아날로그적인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조금은 기대해 본다

이 책을 다 읽고 길을 걸으면서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간은(혹은 나는?) 다른사람의 생각을 모든 형태로 소비하고 또 자신의 이성 - 혹은 감성도 - 의 결과물을 표현하는 창조성 짙은 일을 하는, 별다르지 않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하는. 이러한 정의의 일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란 어떤게 있을까. 문득 궁금. 

나는 이책을 대전에서 부산으로 오는 KTX안에서 처음 펼쳐들고서는 부산에 도착해서 지하철안에서 30분.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마지막 두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기까지 딱 2시간 30분을 소요해 다 읽어버렸다. 최근 태백산맥을 4권까지 읽어가며 꽤 힘들여가던 중이라 이런식의 짧은 책 소비는 심지어 날 당황하게 했다. 

음울한 로맨티시즘. 

마지막까지 결코 드러내지 않을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뜬구름 잡듯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책을 다 덮고나서는 결국 그 소재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버리는. 엄연한 현실속에 존재하지만 자신들이 만든 그 초현실적인 아우라에 깊이 발을 밀어놓곤 그 음울함에 실컷 젖어 있는 그들. 아 인간은 얼마나 위태로운 존재일까. 안정을 가장 바라는듯 하면서도 음울함과 비애가 주는 그 보랏빛 매혹은 결코 거부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어가는 그 연약함. 

무엇보다 나역시 언제나 늘 그런 ‘2Q10’같은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씁쓸할 뿐. 

사람들은 보통 습관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늘 똑같이 (습관적으로)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습관을 먼저 바꾸지 않는 한 원대한 목표는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는 적어도 28일이 걸린다고 한다. 습관을 만드는 것은 껄끄럽게 여기던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자주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113P)

마크 프리츠 지음, 조자현 옮김 ‘더 석세스 - 성공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 42’ 중에서 (예인(플루토북))


매일 같은 행동을 한다면 결과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일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꿈이나 목표는 정했는데 막상 실천은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정신 이상이란 계속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지요. 내가 혹시 늘 똑같이 행동하면서 머릿속으로만 다른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네스프레소에서 뽑은 커피는 썩 마음에 든다. 간편하고. 무엇보다 기기가 참 귀여워서 뿌듯. 

눈앞에는 우리 배불뚝 시스타가 곤히 잠들어있고(저렇게 자꾸 먹고 쉬고를 반복하면 애만 큰댔는데.. 그럼 산모 고생한댔는데 그래도 뭐 어쩌랴^^;) 오랜만에 컴퓨터 뚜닥거리는 중.

대전생활이 좋다.

비록 일상으로의 도피밖에 안된다고 날 손가락질 한대도, 나는 일단 지금이 좋다. 정신없이 바쁜 형부와 우리 배불뚝을 위해 아침밥상을 준비하는 것도, 묵은 청소 빨래 재활용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집에있을땐 절대 안하는 일이지만 여기선 부지런히 한다. 집안일할 여건이 안되는 언니네 부부가 안타깝기도 하고, 평소 받은 은혜(?)들을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고ㅋ 근데 문제는..ㅋ 하다보니 그래.. 요리하고 집안일하고.. 출근보내고는 클래식 틀어놓고 책읽는 이런 생활이 꽤 만족스러워서, 혹 이것이야 말로 내 적성이 아닌가!의심해보게 된다는 것이다.ㅋㅋ 아.. 인생 뭐 있나. 난 뭘 그렇게 아둥바둥 살려고 그러나 이러면서.ㅋㅋ

태백산맥을 시작했다. 아직 1권이지만 꽤 흥미진진. 여기있는 수백권의 책들중에 선택한것이니만큼 요고는 다 읽고 내려가야지. 노래는 Kissin의 쇼팽연주 모음집 CD5장짜리. 한때는 한창 듣던 키신이었는데 멀리한지 오랜만에 들으니 다시 전해오는 감동. 캬!!

연수를 다녀온 나는 좀 더 일상속에 ‘그분’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 더불어 나자신의 지난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젠 생각을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였고, 이렇게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로운 지금 생활에 다시한번 감사한다. 

내가 앞으로 무언가를 해나간다면 그건 절대, 내 힘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일 테다. 이렇게 안주하는 관성에 약한 나인걸 보니 더더욱.ㅎ 그렇지만.. 놓지 않을테다. 하는만큼. 더 성숙하게. 후아! 

어떤 공격이나 시련에도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으려면.. 일단 내 안에 ‘사랑’이라는게 가득~해야 하는 거다. 어떤 공격에도 상처입지 않고.. 오히려 내안의 ‘사랑’으로 그마저 녹여버릴 수 있게. 하지만 아직은 이게 쉽지 않다.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는 내마음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조용히.. 그들 뒤에서 기도나 해줘야지. ‘말’과 ‘행위’로 관여하는 순간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면서 전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흘러가버린다는 것. 

그래서 내주변에 있는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험이 필요하지 않은건 아닐것이나, 그냥.. 서로서로를 바라보며 행복 바이러스를 마구마구 날려도 힘든 세상살이니까.  

문득, 나이가 드나보다.. 싶다.